지난 5월 23일 금요일 은행 업무마감 1시간 30분을 남기고, 훤칠한 키에 애띤 용모를 지닌 한 청년이 제23회차 로또(2003. 5. 10 추첨) 2등 당첨금을 수령하기 위해 복권사업팀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첨금 수령날짜를 이주일이나 지나서 온 20대 초반의 L씨는 부 산에서 아침 일찍 고속버스를 타고 온 터라 조금 피곤해 보였지만 얼굴만은 활기차 보였다. 회사 일이 너무 바빠 오늘에서야 겨우 월차를 내고 서울에 올라왔다고 한다.
부산의 한 중소기업에 다닌다는 L씨는 로또를 사기 전날 밤 화장실에서 오물이 쏟아지는 꿈을 꿨다고. "하늘이 저의 기도를 들어준 것 같습니다. 1등에 대한 아쉬움보다 는 2등에 당첨되어 너무 기뻐요"라며 당첨금을 지급 받기까지 1시간여 동안 무척이나 상기된 표 정으로 통장을 받아들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2등 당첨금 125,157,900원 중 제세금 22%를 제외한 약 9,700여 만원을 받은 그는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더니, 10분 후에 다시 나타나 소아암 같은 난치병을 앓 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1,000만원권 자기앞수표를 꺼내 놓았다. 한달 월급 이 100만원도 안 되는 박봉임에도 불구하고 남을 배려하는 씀씀이가 요즘 젊은이 같지 않다는 느 낌이 들었다.
"나머지 금액은 저축을 해놨다가 장가갈 때 조그만 집이라도 장만할 계획입니다. 당첨사실은 여 자친구한테만 말했어요. 가족들에게는 몇년 후 제가 장가갈 때쯤 지금까지 저축한 돈과 함께 집 을 마련한 뒤 이야기할 계획입니다. 그러면 가족들도 이해할 거예요. 대신 가족들을 위해 조그만 선물을 준비할 겁니다"라고 당첨금 사용계획을 밝혔다.
L씨의 성금은 수백 억원의 당첨자가 낸 수십 억원의 기부금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적은 금액이라도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발적으로 하는 기부야 말로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미덕이 며, 건전한 로또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거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가 남기고 간 1,000만원의 소중한 성금은 그날 바로 KBS 라디오 난치 병 어린이 돕기 성금으로 전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