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관 사람으로 이사와서 사는 사람이 있었어. 가난하고 무식하다보니 양반
들하고 어울리지 못하고 상사람들하고 어울려서 품이나 팔면서 살았지. 그
래 봄철에 남의 집에 일을 갔지. 그 집 소로 논을 갈아주는 것이지.
삯받고 갈아주는데 논을 한참 갈고 길옆에 나와 쉬고 있으려니까, 웬 사람
이 서책을 한 짐을 단단히 짊어지고 와서 힘이 드는 지 쉬어 가려고 옆에
와 앉는 거야. 그래
"그 책을 짊어지고 어디로 가는 거요"
라고 했더니
"팔러 다닌다"
그러거든.
그래
"다 팔면 값이 얼마나 되오"
하니까
"임자를 만나면 더 받는 것이고 임자를 못 만나 아쉽게 팔면 헐한 것이고
그러오"
"그게 전부 소 한 마리 값이 되오 못되오"하니
"임자 만나 비싸게 팔면 소 한 마리 값이 더 되지마는, 소 한 마리 값만
주면 팔겠소"
그러거든
"그러면 이 소를 갖고 가시오, 책을 날 주고 빨리 가시오"
하니 책 짊어지고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느니, 책을 주어 버리고 소를
끌고 가 버렸어.
이 사람은 쟁기는 논에다 박아둔 채, 책을 짊어지고 집에다 감추고 나서
는, 자기 아내보고는
"내가 지금부터 이 책값을 벌려면 소 한 마리 값을 벌어야 집에 돌아올 테
니, 내가 없더라도 그 동안 어떻게 해서라도 굶어죽지만 말고 살아라."
그리고는 내빼버렸어. 그러니 소 임자는 책으로 바꾼 줄은 모르고, 논 갈
러 보냈더니 소를 가지고 도망갔다고 도둑놈이라고 소문이 났지. 아내는 도
둑놈 마누라가 되었고.
한데 어디 가서 소 한 마리 값을 벌어서, 더 크고 좋은 소를 사서 돌아왔
던 말이야. 그러니 소주인도 잃어버렸던 소를 다시 찾으니, 도둑 맞은 소를
책임지고 갚기 위해서 달아났던 것이라고 좋은 사람이라고 오히려 칭찬을
하고 다녔어.
그래 그 동안 감춰뒀던 책들을 방안에다가 수북하니 쌓아두고는, 술을 담
그고 음식을 만들어 놓고서는 생일이라고 동네에서 양반 축에 드는 노인 몇
분을 청해다 놓고 대접을 한다 말이여.
아, 가서 보니까 상놈으로 알았는데 책이 쌓여있단 말이여
"저 책들은 웬 것이냐"
"아, 그전에 우리 父祖(부조)때 보시던 책들이라고"
"아, 그러냐고"
그렇게 술을 몇 잔씩 얻어먹고 돌아가서는, 상사람들과 양반의 젊은 사람
들을 불러놓고는
"자-, 그 함풍 이씨 아무개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알고 보니 양반의 자손
일시 분명하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양반 대접을 해주도록 하여라"
그러니까 책을 쌓아놓는 것만으로 양반이 되어버렸어. 그래 양반이 되어서
사는데 점점 살림이 나아지게 되었지.
하루는 두 내외가 자는데 꿈을 꾸는데 마당에 절구를 놓아두었는데 그 절
구 안에서부터 청룡이 세 마리가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어. 두 마리는
하늘로 올라가 버리고, 한 마리는 올라가다 떨어지고 올라가다가는 떨어지
고 하더란 말이여.
그래 잠을 깨어 가지고 관솔불에 불을 붙여 가지고 나가서보니까, 엄지 손
가락만한 지렁이 세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는거야. 그래 그 지렁이 세 마리
를 그냥 삼켜버렸어. 그 후에 아들 삼형제를 낳았는데, 다 인물이 잘나고
재주가 있어서 글을 잘 배우고 그런단 말이지.
아들이 힘든 일하는 아버지를 도우려고 해도
"글 배우라고 했지, 일하라고 했냐"
하면서 아들들을 가르쳤지. 나중에 형제는 大科(대과)를 해서 승지가 되고,
하나는 군수까지밖에 못됐어.
그래 그 동네에서 그 사람들 이상 가는 양반이 없었어. 원님이 부임차 내
려오면 먼저 찾아가서 인사를 하는 집안이 되었지. 지금도 함풍이씨라면 다
알아줘.----구비문학대계 1-1.
앞에 나온 <선생의 꿈으로 공부 잘한 백정>의 이야기처럼 자식에 대한 헌
신적인 노력으로 인해 복을 받아 잘 살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함평이씨 의
오기인 듯하다.<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