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꿈 꾼 그대에게
- 나에게 보내는 편지-
어릴 땐 의기소침했던 그대여, 늘 이상의 꿈을 잃지 않더니 젊은 시절 용꿈을 꿨기 때문인가요. 중년 들어 얼굴이 마치 함박꽃 같고 용기백배해졌으니 말입니다.
“억눌린 소망의 표현이 곧 꿈이다. 꿈은 현재의 관심사나 미래에 대한 예지의 기능이다.” 이는 홍순래 편저의 <현실 속의 꿈 이야기> 첫머리의 글이지요. 또 “꿈은 자신의 지나간 일, 현재의 일, 미래에 다가올 일 등,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거의 들어맞는다.” 라고 그는 말했지요.
그 말이 사실인가 봅니다. 아침잠에서 깨어나면 때론 두려울 때도 있었지요. 미래에 대한 예지의 기능이라니? 꿈자리가 뒤숭숭한 날이면 더욱 그랬어요. ‘개꿈이겠지.’ 하며 훌훌 털어버리려 해도, 어떤 날은 단 한 시간도 못되어 영락없이 맞아 떨어질 때면 예언자라도 된 양, 자신도 모르게 으스스해지곤 했으니 말입니다. 반면 좋은 꿈을 꾸었을 때는 분명 기대에 부풀어 하루가 즐거웠던 것이 사실이었지요.
그러나 지금 시대가 어느 땐가요. 일찍이 로켓이 우주를 가고 사람까지 가는 시대랍니다. 그대 역시 정신적인 세계가 남다르지 않은 그저 평범한 주부가 아니던가요.
황소 등을 타고 신작로를 가고 있는 꿈을 꾼 것은 스무 살 되던 해 봄이었지요. 그때, 암소를 타고 홀연히 그대 곁에 나타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었습니다. 둘이는 친구처럼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물이 고인 웅덩이를 지나기도 했고, 황토 길을 지나다가 지치면 미루나무 그늘에서 쉬기도 했지요. 그해 가을 생각지도 못했던 결혼을 하였습니다. 가정에서 대통령으로 표상되는 인물은 소띠인 남편이었고, 인생의 길을 가는 동반자였지요. 기이하고 신비한 꿈이기에 놀랐습니다.
놀랄 일은 그뿐이 아니었지요. 산기슭에 바스락거리는 기척에 놀라 돌아보니 등은 푸른색이요, 배는 붉은색인 두 가지 색을 지닌 엄장의 용이었습니다. 용은 여러 소나무를 차례로 휘감았다 놓기를 반복하였지요. 그리고는 능선에 오른 후 이내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깨어나니 또 꿈이었습니다.
용꿈을 꾼 지 십오 년 되던 해, 호미질 하던 기량으로 『새농민』에 보낸 원고가 당선작으로 뽑히는 꿈같은 일이 일어났지요. 경사는 겹친다고 했던가요. 연이어 그해겨울, 『삼성복지재단』에서 내리는 귀한 ‘효행상’을 서울에서 받았지요. 전국의 많은 효부들 중에 용케도 그대가 수상의 영광을 안은 것은 용꿈을 꾼 덕이라 생각됩니다.
당시에 KBS2 방송에서는 <미스터리 법정>이란 프로가 있었고, 그대는 용꿈을 상기하여 써 보낸 원고가 채택되어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행운도 얻었지요. 방송국 측은 해몽 단원들에게 그대의 수상기록을 절대 비밀로 했습니다. 그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네 명의 해몽단원들은 그대의 꿈을 모방한 동영상을 보며 곧 해몽에 들어갔습니다.
네 사람 각자의 해몽이 다 엇갈렸습니다. 산나물을 뜯는 꿈이라고 했고, 어떤 이는 아기가 잉태됐으며 장차 태어날 아기가 훌륭하게 될 거라고 했습니다. 또 정신적으로 많이 불안한 상태로 지내고 있음을 말하기도 했지요.
마지막 순서를 기다리던 역학박사의 해몽은 세 사람과 전혀 달랐습니다. 두 가지 색을 띤 용은 두 종류의 광영이 있을 예시라고 했지요. 그 시기는 예측할 수 없으며 시간이 꽤나 걸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용이 기는 것은 세월을 말하며 소나무는 한해를 뜻했습니다. 여러 그루의 소나무를 휘감았다 놓기를 반복한 것은 여러 해를 어렵게 보내고 난 후, 영화로운 일을 맞이하게 된다며, 그는 자신의 해몽이 틀림없음을 확신했습니다.
용의 비늘이 거친 소나무를 휘감는다는 뜻은, 피부를 도려내는 것 같은 내면의 아픔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젊은 시절에 피나는 노력이 많았을 것이라는 말에, 그대는 방송을 보다 무릎을 탁치며 주책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지 않았던가요.
그래요.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지요. 꿈이 없는 사람은 날개 없는 새요, 향이 없는 향나무와도 같다고요. 그대는 항상 이상의 꿈을 가지고 있어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었고, 참아낼 수 있었지요. 고달파도 늘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거기엔 행복이란 것도 동반했으니, 그대에게 있어 꿈이란 아마도 노년을 위한 긍정적인 육체의 훈련이기도 했나 봅니다.
그대의 꿈이 꼭 맞아 떨어졌군요. 그리고 두 가지 색을 띤 용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도 이제야 깨달았겠지요. 그대에게 있어 작가로서의 등단이란 광영보다 더 큰 보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용꿈을 꾼 그대여, 그대의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럼 안녕히.
(『제물포수필』2009. 53집)
원주에서, 최금복씨가 보내온 글을 전재해 올립니다.--홍순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