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도 싫어지는 시댁과의 연대가 무섭다. 시부모를 모셔야한다. 제사도 지내야 한다. 남편도 점점 실망이다.
부부문제를 다루는 사랑과 전쟁을 보면 결혼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다. ; ;
그래서 문화센터에서 꽃꽂이 강습을 하며 크리스챤으로 지저스 크라이스트가 ; ;자신의 백이라며 오만하게 혼자 살아가는 진희 씨!
진희 씨, 저녁을 먹고나면 커피에 달강달강 얼음 띄워 우리집에 놀러오길 좋아했다.
나도 진희 씨 방문은 늘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녀가 들고 오는 냉커피 맛이 유난히 좋았고, 또 일주일 두 차례 꽃꽂이 강습 후, 남은 소재로 오아시스에 작품화시킨 꽃을 통째로 들고와 우리집 접시나 항아리에 적절히 배치시키는 그녀의 긴 세월 연마된 솜씨에 ; ;흠뻑 매료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느날 나는 학교 놀이터 정글숲 꼭대기에 앉아 있었다.
그때 번들번들 누렇게 빛나는 길다랗고 살찐 구렁이가 정글숲 가까이 오는게 아닌가! 나는 꼭대기에 앉은 채 그 구렁이를 내려다 보고 있었는데. 그 구렁이가 나를 향해 고개를 쳐들며 묻는 것이다.
"진희. 어디 있노?"
"몰라!"
"안다카던데!"
"몰라!"
구렁이는 내 단호한 대꾸에 주눅이 든 듯, 고개를 살포시 숙이더니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 채. 운동장을 가로질러 아득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다음날, 진희 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늦은 저녁 우리집에 왔는데 이번엔 캔 맥주 두 개를 들고 왔었다.
"오늘은 한 잔 해야해."
그녀의 말에 나는 냉장고 속을 뒤져. 치즈와 아몬드 따위를 꺼내면서 새벽녘 꿈얘길 들려 주었다.
"경상도 구렁이가 진희 어딨노 물어서 몰라 했어!"
"농담이제?"
"농담이 아니고 몽담!"
"그럼, 좀 가르쳐 주지,"
"꿈에서는 분명히 몰랐거든, 꿈에서도 알았으면 저기 장미 빌라 2층에 산다고 말해 줬을 텐데."
"......"
아! 그랬는데! 몇 가지 안주를 챙겨 진희 씨 앞에 앉았는데 진희 씨 울고 있는 게 아닌가!
냉정도도하기로 천하에 둘도 없는 독신녀 진희 씨가 하얗고 통통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털어놓은 속내.
나이 54 살, 처녀라 하지만 노태는 이미 자리잡았다. 허나 그녀의 마음은 항상 풋풋한 처녀였다. 그리고 50 살 먹은 네 살 연하의 남자를 만났다. 그녀 표현으로 54년만에 정말 남자다운 남자, 사람다운 사람을 처음 만났다는 것이다. 은행지점장이었고, 그 사람도 아직 미혼이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기독교인이었으며 교회 행사 중에 자연스럽게 친해졌으며 6개월째 열정적으로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랬던 진희 씨, 그 남자가 결혼하자고 보채면 못 이기는 척 결혼하려고 마음까지 먹었더랜다. 그랬던 그 남자 오늘 다른 젊은 여자와 결혼식을 올려 버렸다는 것이고. 진희 씨 절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숨에 캔을 비우더니 대뜸 나에게 화살을 겨누는게 아닌가!
"꿈에서라도 나를 안다고 해야지! 당신조차 모른다 했으니 나에게 올 결혼운이 다른데로 가 버렸잖아! 아무도 날 돕지 않아!"
그녀는 엉엉 소리내어 우는 것이다.
두 해 전, 여름밤의 다소 난감하고 애틋한 기억이다.
진희 씨, 그 사건 깊은 무의식에 가두고 여전히 독신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나는 때때로, 정글숲 꼭대기에 앉아있는 나를 향해 고개를 쳐들고 '진희 어디 있노?'를 묻던 그 엄청나게 굵고 길었던 구렁이를 일부러 기억해 낸다.
그리고 그 꿈을 상징성 이해로 접근해 보면!
나도 전혀 모르는 가운데 진희 씨에겐 냉정하고.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돈과 통솔력과 재능을 겸비한 유능한 인재가 가깝게 다가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물은 나에게 물었듯 진희 씨의 신원을 조회했을 게 틀림없다. 그녀의 백 그라운드. 크고작은 금융거래, 마이너스대출 까지도. 그리고 그녀가 가진 가난에 혀를 찼을 것이다. 어쩌면 겉만 반짝반짝 빛나는 그야말로 속 빈 강정. 빛 좋은 개살구에 적잖이 실망했을 것이다. 이러한 추측은 내가 앉아있는 정글숲으로 인해 가능하다. 운동장 가장자리에 사각의 모래밭이 있고 그 위에 정사각의 ; ;철제 구조물이 ; ;입체적 정방형을 이루며 올라간다. 그 구조물은 비어있다. 간신히 발을 디디고 두 손으로 이용해서 올라갈 따름이고, 다시 내려올 따름이다. ; ;모래밭 그것은 척박한 환경이다. 그리고 정글숲의 ; ;그 공허한 ; ;구조물. ; ;그 구조물 위에 홀로 앉은 나. ; ;나는 어쩌면 진희의 분신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그 기름진 구렁이는 진희에게 진희의 ; ;현주소를 묻는 것이다. 현주소 그것은 누구의 가족이며 누구의 조카인가하는 것이고 그 혈연은 사회적 입지가 어느정도인가 묻는 것이다. ; ;그러나 진희는 조실부모, 홀홀단신이나 어여쁘게 보이는 진희를 두고, 엉뚱하게 ; ;보이지 않는 진희를 찾는단 말인가. 그리하여 진희는 모른다 한다.
'몰라'
사랑이 절절하면 투정이 따르는법.
너, 나 사랑하니?
몰라!
그녀는 그 투정이 현실에 먹혀들 줄 알았다. 사랑이 그녀가 지닌 가난. 나이를 누르고 만세를 부를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 ; ;체념은 동시에 진행된다. 안다카던데! ; ;그것은 ; ;구렁이의 탐색이자 진희의 속셈이기도 하다.
'나와 육 개월을 사겼으면 내 진실을, 내 진심을 알게 아닌가, 내 몸. 내 신앙, 내 꽃 다루는 솜씨가 그대를 능히 차지할만 하지 않는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질문이자 기대조차 이미 변절적 표현인 것이다.
' 안다 카던데.
그야말로 '카더라통신'인 것이다.
카더라 통신은 언제나 거품이다. ; ;수박의 겉홭기에 불과하다.
금융인은 거품을 싫어한다. 철저한 실적 위주와 함께 인맥은 부동산과 다름없다. ; ;평생지기도 ; ;그런 범주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그는사라진다. 진희 씨와의 짧은 인연은 이름만 간혹 기억될 뿐인 헤프닝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꿈은 주체와 객체의 혼합이기 일쑤다. ; ;그야말로 ; ;왜곡과 굴절의 황당시츄에이션! 그러나 그 환타지를 통하여 은닉된 진실은 적나라하게 폭로된다.
그리고 진희 씨. 54년 만에 가장 사람다운! 가장 남자다운 사람이 제 맘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는 것! 그것은 돈의 힘이다. 돈이 가진 매력이다. 그 힘과 매력을 맛 보자마자 놓쳤으니 그 차갑게 도도한 진희 씨, 통곡할만 하다.
그러나 그 사람은 진희 씨의 운명이 아닌 것이다.
운명, ; ;원앙지연! 그 인연은 막고 밀어내도 어느새 다가오는 것이며, ; ;운명적 인연 아니면 바람처럼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