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가 가슴에 부딪쳐서 많은 조각으로 쪼개진 꿈 >
(글: 김하원) 분신 자살한 전태일 씨의 태몽이다. 전태일, 그는 1970년 11월, 22살의 나이로 청계천에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우리나라 노동운동 사상 최초로 분신자살함으로써 어두컴컴한 우리나라의 노동계에 빛을 던진 사람이다.
그런 그는 과연 어떤 태몽을 가졌을까? 다음은 <월간조선> 87년 8월호에 나온, 그의 어머니 이소선 씨의 인터뷰 기사에서 그의 태몽을 간추린 것이다.
[또 한 며칠 있다가 친정집에 갔는데, 방안에서 문을 열어 놓고 보니 이상하게 밤중에 해가 떠요. 그래서 친구들하고 "밤중에 달이 떠야 하는데, 왜 해가 뜨노?"하고 있는데, 아이고, 그 해가 차차차 막 내 곁으로 오는데 무섭고 겁이 나더라고. 그래서 내가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그냥 해가 탁 내 가슴에 부딪쳤는데, 그만 내가 다 산산조각으로 깨어져서 없어져 버렸어요. 그런데 꿈에도 ‘큰일났다 싶어’ 내 가슴을 만져 보니, 아, 가슴이 만져져요. "아 살았다, 살았다." 그러고 있는데 또 그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네 가슴은 쪼개져서 벌써 사방으로 흩어졌다. 저 앞산을 봐라." 캐요. 그래 앞산을 보니 뭐가 번쩍번쩍해요. 그때 할아버지가 이러능기라.
"해가 내 가슴에 부딪쳐서, 가슴과 함께 수많은 조각으로 쪼개진 것이, 저렇게 흩어져서 온 고을을 밝힐 거다." 이런 꿈을 꾸고 나서, 태일이를 임신하게 됐어요.]
이 태몽은 -- 꿈이 길어 좀 어렵기는 하지만 -- 전태일 씨의 생애를 그대로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태몽에 태양이 나타난 것은 그가 우리나라 노동계의 찬란한 빛이 될 것을 뜻했던 것이다. 그 태양이 쪼개져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온 고을을 밝혔듯이, 그는 자신의 몸을 불살라 우리나라 도처의 노동현장에 노동운동의 횃불을 밝혔던 것이다.
'태양이 깨져서 그 조각들이 흩어져 어두운 고을을 밝히다!' 이보다 더 어떻게 그의 인생을 간단명료하게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것 역시 놀랄 만한 상징수법이다.
여기에 싣지 않은 다른 꿈들 역시 이와 비슷하게 전태일 군의 앞날에 대해 정확하게 예지한 것들이었다. 그가 자기 몸을 희생하여 노동운동의 빛이 될 것을 예지했으며, 또한 그의 어머니도 자식과 더불어 험난한 인생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을 예지한 것들이었다(자식이 죽은 뒤로 그의 어머니는 아직도 자식의 뜻을 잊지 못하고 여자의 몸으로서 감옥을 들락거리며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태몽은 전태일 군의 어머니를 통해, 그리고 그 가족들을 통해 예지해 주었던 것이다.
< 물에 불은 콩이 굴러가는 꿈 >
(글: 김하원) 인터뷰 기사에는 꿈 이야기가 몇 개 더 있었다. 그걸 다 들자면 분량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만한 꿈을 골라 싣는다. 한 가지 더 예로 들자면 이런 꿈도 있다.
[꿈에 한 할아버지가 나타나 어떤 산에 올라가라고 해서, 바위와 가시덤불을 헤치고 피투성이가 되어서 겨우겨우 봉우리까지 올라갔다. 거기에 가서 보니 바위 속에 메주콩이 가득 들어 있었는데, 그 콩들은 모두 물에 불은 것들이었다. 잠시 후, 그 불은 콩들이 산 아래로 마구 굴러 내려가는 것을 보고, 메주콩들이 굴러간다고 소리쳤다. 그러자 그 할아버지가 "이렇게 콩이 제 갈 데로 다 굴러가서 땅에 심어지면, 배고픈 일꾼들이 그 콩나무에 달린 콩을 따 먹고 배를 채우며 한을 푸는 거다." 하고 말했다.]
지금 좀 배웠다는 사람들에게 만일, '전태일 씨는 왜 분신자살했을까?'하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까? 짧은 생애나마 그의 일생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 '열악한 노동조건, 노동자를 사람이 아닌 기계 대접하는 업주의 횡포, 그런 환경이나 횡포를 방조하는 정부관리들, 또 정의감에 불타는 그의 성격 등등'을 그 이유로 들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이것저것 모르는 시골 노인에게 물었을 때, "'왜'는 무슨 놈의 '왜'야? 다 지 팔자(운명)니까 죽었제."하고 말하면 모두가 비웃을 것이다. 무식하고 고리타분한 영감이라면서.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이처럼 그의 태몽을 알고 보면, 더 이상 쉽게 비웃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한편 태몽이 다음과도 같이 소개되고 있기도 하다.
와룡산 바위틈을 뚫고 나온 콩이 사방에 흩어지는 태몽을 꾸고 나온 아들이었다. 꿈 속의 신선은 "이 콩이 세상에 퍼져 열매를 맺어야 모든 백성이 먹고 산다"고 말했다. --팔순 맞은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신정선 기자, 조선일보. 2008.12월.13.
< 골목길에서 호미 세 자루를 주운 꿈 >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 활동가이며, 풀무학교 전공부에 2학년으로 재학 중인 여준민의 인터뷰 글 중에서 일부를 간추려 살펴보았다.
‘흙은 정말 나의 운명인 것일까?’ 요즘은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엄마가 나를 낳기 전에 꾼 태몽이 골목길에서 호미 세 자루를 주운 것이라고 했고, 1974년 2월 생인데 사주에 土(흙)이 있다는 것도 자꾸 흙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논과 밭에서 기고 쪼그려 앉아 흙과 작물을 매만지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쏙 빠져드니, 내가 자꾸 ‘운명’을 생각하는 것은 나름 이유가 될 것 같기는 하다.
< 노인이 노란 학을 타고 내려와 책을 주는 꿈 >
최송설당의 태몽이다. 아버지인 최창환은 맏딸 송설당이 태어나기 5년전 고부에서 김천으로 이주했다. 고부에서 첫부인과 사별한 최창환은 김천에서 경주 정씨 집안 처녀를 후취로 맞았다. 첫아이를 임신한 정씨는, 달 밝은 밤에 흰옷 입은 노인이 노란 학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붉은 글자로 쓴 책 한 권을 주고 가는 태몽을 꾸었다. 조상의 원한을 풀어줄 아들을 간절히 원하던 최창환은 아내의 태몽을 듣고 아들 낳을 징조인 줄 알고 기뻐했다. 하지만 정작 태어난 아이는 딸이었다.
1930년 김천고보 설립을 위해 전 재산을 기부한 최송설당은 책을 받는 태몽으로 태어났기에, 문예와 관련된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최송설당은 50편의 가사와 258수의 한시를 남긴 조선의 마지막 여류시인이다. 예순여덟 살 되던 1922년에는 ‘송설당집’ 3권 3책을 간행했다. 최송설당의 시가를 주제로 한 박사학위 논문이 나올 만큼 작품 수준도 높다. --신동아, 2007,06,25 요약 발췌.
< 금잔화에서 씨를 받는 꿈 >
학술원 회원으로서 평생을 육종 연구에 바친 서울대 농대 학장 한신규 씨의 태몽은 [금잔화(키가 크고 가느다란 꽃)에서 씨를 받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그 꿈을 생각하고, 아들이 항상 가느다랗게 야위어 있는 것은 순전히 이 태몽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직업이 바로 이처럼 '나무씨를 받아서 연구하는 것'이라 생각할 때, 이는 그의 직업을 상징했다고 보는 게 더 옳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