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지어낸 거짓 꿈의 詩
자신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경우, 또는 자신의 목적 달성
을 위하여 꿈을 빌어 표현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東州의 두 작품을 예로 들
어본다.
◎ 夢自身爲皐陶. 進講于虞帝. 未知是何祥也
庭遣已去幾千年 고요가 이미 죽은 지가 몇 천년이런가
衢室都兪事杳然 네거리의 집에서 政事를 의논하던 일이 아득하네
一部虞書細旗上 한 권의 순임금의 글이 깃발위에 자세하니
夢中猶在聖人前 꿈속에서 아직도 성인의 앞에 있는 듯하네
{{) * 皐陶:(고요):舜 임금의 신하. 字는 庭堅. 司寇. 즉 獄官의 長을 지냈음.
* 衢室 : 聽政之所也. 政事를 듣던 곳.
* 虞:순 임금 성 우
* 都兪 (도유우불):都兪는 찬성, 은 반대의 뜻. 요임금이 君臣과 政事를 의논할 때 쓰
인말. 轉하여 君臣간의 토론·심의의 뜻으로 쓰임. }}
----詩集 卷二十四. 256쪽.
꿈에 자신이 고요가 되었다. 순 임금에게 나아가 講했다. 이것이 어떤
상서로움인지 모르겠다. 시의 내용은 단순하다. 이 시는 꿈속에서 자신이
舜임금의 신하로 獄官의 長을 지냈던 皐陶가 되어 순 임금에게 나아가 講했
다는 설명이 달려 있다. 이어 "어떠한 상서로움이 있을 것인가" 하여 자못
기대감에 설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실 윗 시의 내용과 덧붙인 말로 꿈을 살펴본다면, 동주가 예지한 대로
좋은 꿈으로 현실에서 이루어지게 되어있는 상징적인 미래예지의 꿈이다.
즉 舜임금 즉, 귀인을 만나는 꿈은 하나같이 현실에서 좋은 일로 실현되고
있다. 실례로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이나 유명인사를 만나 이야기하는 꿈을
꾼후에 복권에 당첨되는 등 여러 사례가 있다. 東州의 경우에 있어서도 아
마도 이 꿈을 꾼후에 참형을 면하거나, 유배지에서 풀려나거나 다시 서용되
는 일로 실현되었으리라 보여진다. 하지만 이 시는 그 당시 동주가 처한
상황과 관련지어 살펴보면, 동주의 생애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병자호란 당
시에 강화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막지 못하고 도망친 비겁자로 몰리게 된다.
강화의 책임자로 있던 김경징(金慶徵)은 사사되고 기타 참형에 처하졌으나,
동주는 죽음을 면하고 귀양가는 것으로 대치되는 바, 이 시는 자신의 처리
문제로 온 조정이 들끊었던 시대와 관련이 있다고 보여진다.
이 詩는 꿈을 빌어 자신의 뜻을 은연중에 나타내고자 했던 거짓꿈 이야
기 로 살펴볼 수도 있다. 특히 자신이 꿈속에서 (舜임금 당시 형벌을 주관
하던) 獄官의 長을 지냈던 皐陶가 되어 순 임금에게 나아가 講했다는 내용
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신이 참형을 당하게 되거나, 오랜 세월 유
배생활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작시 연대 불명으로 추정해서 언급함) 부당
함을 꿈을 빌어 이야기하고 싶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남은 평생을 비
난을 받으면서 유배지에서 살다가, 말년에 간신히 서용되기에 이른다. 이
러한 말년의 서용에 있어서도 수많은 반대가 있었다.
< 秋浦 公이 찾아와 시를 지어주다 >
을미년 6月 22日 밤의 꿈에 추포 황공이 돌아가신 아버님을 찾아 왔다. 선
친은 때마침 외출 중이셨다. 추포 공은 나를 불러 수중에서 조그만 글 뭉치
를 보여주었다. 가느다란 대나무 한 가지 그림에 칠언절구 시가 있었는데
끝에 雨打 라고 호가 되어 있었다. 내가 공에게 이르기를 공은 참으로 雨
打를 만났습니까? 그러나 이것으로 호를 하니 빼어나서 꺾이지 않는 뜻이
빠져 있으니 어떻습니까? 공이 말하기를 그렇다. 마땅이 이것을 고쳐서 다
시 오겠다. 이미 나갔는데 선공께서 象村공과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
말을 갖추어 아뢰었다. 두 공이 웃으면서 그것에 수긍했다.
{{) 乙未六月二十二日夜 夢秋浦黃公來訪先公 先公偶出 秋浦公呼余 示手中小藁紙 畵細竹一
枝 書七言絶句 末書號曰雨打. 余謂公 公信遭雨打矣. 然以是爲號 欠挺立不撓之意. 何如. 公曰
然. 當改是而復來 旣出 先公與象村公在坐 余具奏其說 二公笑而首肯之
}}
공의 시는 다만 낙구만 기억한다.
苦遭雨打離披{{) * 離披--꽃이 활짝 핌
}}甚 심하게(몹시)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만나도,
零落黃茅白葦中 꽃은 활짝 피어나고, 시들어진 누런 띠풀은 흰 갈대 가운데
있네
어찌 공이 옹진으로 귀양가서 죽었는가? 누런 띠풀과 흰 갈대의 고장이라.
인하여 공경스럽게 차운하여 적는다.{{) 公詩只記落句. 苦遭雨打離披甚 零落黃茅白葦中 . 盖
公謫甕津以卒. 卽黃茅白葦之鄕也 因敬次以識之.
}}
海上黃茅白葦叢 바다위에 누런 띠풀과 흰 갈대가 떨기를 이루었으니
亭亭直節傲霜風 우뚝하니 곧은 절개가 서리와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네
縱然雨打離披甚 설사 비가 치더라도 꽃이 활짝 피어나리니
須識眞剛在此中 모름지기 참다운 굳셈이 이중에 있음을 알 것이로라
서리와 비 등 자연의 어려움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우는 갈대를
빗대어, 현실의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의연한 자세로 자신의 지조를 지켰
던 추포공을 추모하고 있다.
이 詩는 1655년 乙未년, 동주의 나이 66세때 지은 시로, 이미 추포 공이
죽은 지 38년이 지나 있었다. 秋浦공 黃愼(1560.명종 15---1617.인조 4)은
1613년 계축옥사에 李爾瞻의 사주를 받은 죄수 鄭浹의 무고로 옹진에 유배
되어 배소에서 죽었다.
권필의 詩에 죽은 金德齡의 억울함을 추모하여 나타낸 醉時歌{{) 醉時歌에서는 권필이
꿈속에서 역모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은 김덕령 장군의 醉時歌 를 읽었다고 함으로써,
정쟁으로 인한 어두운 시대현실로 인해 자신의 뜻을 펼 수 없었던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빗
대어 노래하고 있다.
}}{{) 醉時歌에 대해 자세한 것은 權 의 夢詩小考 , 洪淳來, 漢文學論集, 제16輯. pp194-196.
을 참조 요.}} 詩가 있듯이, 이 시에서도 간신 이이첨의 모함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黃愼
에 대한 추모의 정을 노래하고 있다. 아울러 유배지에서 억울하게 죽은 黃愼을 통해 자신
의 억울한 유배생활을 빗대어 말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 夢作
--明日蒙敍 命臺論見阻
況冥三十一年餘 묻혀산 지 어언 삼십 일년여
陋巷安貧坐自如 누추한 거리에서 가난함을 편안히 여겨 태연자약하였노라.
誰遣枯 沾雨露 누가 마른 풀뿌리를 雨露에 젖게 했던가
只煩閭闔數行書 다만 오두막집 마음에서 떠나지 않아 몇 줄 글을 쓰노라.
---------東州集 卷二十四. 261
이 작품은 지어낸 거짓꿈이 아닌 창조적인 사유활동의 작품으로 분류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꿈속에서 지었다는 夢作을 강조함으로써, 꿈을 빌
어 자신의 뜻을 나타내고 있는 뜻이 강하기에 지어낸 거짓꿈 이야기로 보여
진다.
31년 만에 드디어 다음날 敍用의 은혜를 입게 되어 몹시 기쁜 날이 다가
왔다. 비겁자로 몰린 그 동안의 나날은 이루말할 수 없는 심적인 고통과 경
제적인 핍박을 받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꿈을 빌어서 그동안 安貧樂道하면
서 지내왔다고 자신을 태연스럽게 미화시키고 있는 東州의 모습을 볼 수 있
다.
또한 마른 풀뿌리를 자기 자신으로, 雨露를 聖寵으로 비유적으로 나타내
면서, 기쁨의 날이 오게 된 것을 자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처해온
안빅낙도의 생활에 못내 아쉬워한다는 심정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
우 자신의 이야기이면서, 차마 꿈을 빌어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
는 東州의 쓰라린 내면세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Ⅲ. 맺음말
문집에 전하는 모든 夢관련 詩나 夢中詩를 대상으로 삼지 않았기에 夢中
詩의 모든 면을 살펴볼 수 없었지만, 선인들이 꿈에 대해서 어떠한 전개 양
상을 보이고 있는 지에 대해서 실제 여러 詩작품을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살
펴보고자 했다.
權 , 李敏求, 李 光, --을 비롯 많은 先人들의 문학작품에서 꿈이 생활
화되고 일반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夢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미약한 실정이다. 보다 더, 선인들의 실증적인 꿈사례에 대한 분석을 통해
꿈에 대해서 올바른 접근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2000,1,22일 홍 순 래. 씀.
이 글은 꿈에 관한 논문을 준비중에 있는 제 자신의 여러 글 중에 하나를
올립니다. 선인들의 한시 문학작품을 통해 꿈에 관해서 어떠한 인식을 가지
고 있는 지를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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