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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몽에 대한 잘못된 인식비판 10가지(통합)

홍순래 박사 꿈해몽 (2010.01.22)

4. 태몽에 대한 잘못된 인식 비판



필자는 오랜 동안 꿈을 연구해왔으며, 20여권의 방대한 분량의 『홍순래 꿈해몽대사전』을 출간하고자 하는 해몽 전문가 입장에서, 신문지상이나 방송 및 인터넷 상에 꿈해몽이나 태몽에 관한 여러 보도나 글에 대해서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꿈이나 태몽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하다’ 할 정도로 엉터리 내용이나 잘못된 시각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씁쓰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러한 것을 바로잡고자, 틀린 언급에 대한 올바른 풀이를 시도해보고자 한다.



1) 꿈은 반대라는 엉터리 역술인에 대하여


모 케이블 TV 방송을 보다 보니, 하늘에서 시커먼 철근이 떨어지는 것을 붙잡는 태몽을 꾸고 태어난 여아에 대한 풀이를 하면서, ‘쇠붙이는 남아의 상징이지만, 꿈은 반대이니 여아가 태어났다’고 엉터리 태몽풀이를 하는 역술인을 본 적이 있다. ‘아니, 꿈이 반대라고’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이며, 엉터리 근거없는 말로 떠들어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꿈이 반대라면, ‘이빨 빠지거나, 신발 잃어버리는 꿈이나 오늘밤에 꾸기를 바란다. 아주 좋은 일이 일어날 테니까”


꿈은 결코 반대가 아닌, 상징의 이해에 있다. 호랑이의 태몽이라고 반드시 아들은 아닌 것이다. 호랑이도 암수가 있으니까 여아가 출생할 수도 있으며, 또한 호랑이 태몽의 여아도 상당수 많이 있다. 다만 여아인 경우 호랑이처럼 활달하고 남성적인 성품의 여아일 것을 예지해주고 있다. 여러 사례를 살펴보면, 해의 태몽으로 태어난 아이도 반드시 남아가 아닌, 여아가 출생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꽃의 태몽으로도 남아가 출생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태몽 표상에서 남아․여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남성적이냐 여성적이냐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점쟁이나 역술인은 꿈해몽에 대해서 올바른 해몽을 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꿈을 해몽하는데 있어, 꿈을 꾼 사람의 생년월일 등의 사주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며, 중요한 것은 꿈을 꾼 사람이 처한 상황이나 마음먹고 있는 바에 대한 이해이다. 꿈해몽은 육감(六感)을 넘어 칠감(七感)의 세계이자, 사차원의 세계라고 할 수 있는 정신능력의 세계가 펼쳐내는 상징기법의 세계이다. 꿈의 세계는 또한 문학적 상징 및 일상의 관습적 언어와도 일맥상통하는 바, 이러한 꿈의 상징기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수많은 실증사례를 많이 알고 있는 필자와 같은 학자적인 꿈해몽 연구가가 가장 잘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만, 필자보다 뛰어난 꿈해몽가를 찾으라고 한다면, 솔직한 고백으로 이제 막 신이 내렸다고 하는 강신무(降神巫)에 대한 존재를 부인하지 않는다.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지만, 우리가 알 수 없는 신비한 영적 세계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러한 영적 세계의 발현이 강신무를 통하여 접신(接神)되어 우리 인간들에게 내리는 말인 신탁(神託)과도 같은 공수의 말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강신무의 접신(接神)을 통해 나오는 말인 경우, 우리 인간의 말이 아닌, 어떠한 영적 세계의 힘을 빌어 진행되기에, 꿈해몽에 있어서 상징의미에 대한 해석을 뛰어넘어 직관적인 올바른 의견 제시가 가능하다고 보여진다.



2) 태몽의 예지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대하여


꿈에는 꿈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부정하는 것은 꿈의 ‘예지적 기능’이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꿈의 내용은 개인이 끊임없이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대상이나 아직 충족되지 않은 강한 욕구, 불안 등의 심리 상태, 신체적인 건강 상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는 것으로 본다. 이와 함께 잠자는 동안 잠자리에서 오는 물리적인 외부 자극들도 부수적으로 꿈의 생성에 참가한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임신 중에는 엄마 아빠를 비롯한 가족들의 모든 관심이 태아에게 집중돼 있고, 또한 아기의 외모, 건강, 미래 등에 대한 어떤 소망을 갖게 되기 때문에 이것이 특별히 태몽으로 인식되어 나타나기 쉽다. 가령 색이 아주 곱고 잘 익은 큰 복숭아를 손에 들고 있는 꿈을 꿨다면 이는 건강하고 소망스런 태아를 갖고자 하는 소망의 상징이고, 인기 연예인이 등장했다면 연예인처럼 인기나 영향력을 가지게 될 아기가 태어났으면 하는 강렬한 소망이 구현된 것이다. --출처 - 앙쥬


꿈에는 여러가지가 있는 바, 소망이나 불안 등이 표출되는 심리적인 꿈이 있을 수 있으며, 주변에 대한 위험을 일깨워주는 꿈, 신부 내외부의 감각적인 자극으로 인한 꿈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태몽은 이러한 것을 뛰어넘어, 장차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상징적인 미래예지 꿈이다.


심리학자들은 앞의 인용 예시글에서 살펴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꿈의 예지적인 기능에 대해서 믿지 못하고 있으며, 오직 심리적인 측면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를 비유하자면, 하루살이는 내일이라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바와 같이, 꿈의 주요한 기능이 미래예지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겠다. 태몽의 세계는 미래예지적인 꿈의 세계이지, 심리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차원이 아닌 것이다.


앞의 인용 글에서, 심리적인 꿈에 대한 의견으로는 일부의 심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다소 맞는 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예지적인 꿈의 세계인 태몽의 세계는 영적인 운명의 예지요, 학문적인 해석으로 언급될 세계가 아닌 것이다.


큰 복숭아를 손에 들고 있는 꿈인 경우, 건강하고 소망스런 태아를 갖고자 하는 소망이 꿈으로 표출되었다는 견해는 일면 그럴싸하게 보이나, 태몽이라는 꿈의 예지적 특성을 이해한다면, 엉터리 견해인 것이다. 그렇다면, 좋다고 보여지는 탐스런 복숭아 꿈이 아닌, 썩은 복숭아를 들고 있는 안좋은 꿈으로 유산이나 요절로 실현되는 태몽의 경우에는 어떠한 설명으로 언급을 해야 할 것인가. 다시 태어날 아기가 '유산하면 어쩌지'의 불안한 심리표출의 꿈에서 이러한 꿈을 꾸게 되었다고 말할 것인가? 중요한 것은 태몽 표상에 등장된 상징물의 전개대로 그 이후에 예지적으로 꿈이 실현된다는 데에 있다.


역사적 인물의 태몽이 그렇고, 오늘날 수천 수만의 태몽 사례는 이러한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수많은 태몽의 실증사례를 살펴보면, 이러한 태몽 이야기가 거짓으로 지어낸 것이 아닌 것임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태몽속에 예지된 그 절묘한 상징기법대로 몇십년이 지나서라도 현실에서 실현되는 것에 대하여 놀라움과 신비로움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3) 태몽의 진정한 예지력은 ‘태교’에 있는가?


태몽의 예지력이 근거가 없다거나 비과학적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도 그다지 바람직한 태도는 아닌 것 같다. 사실 태몽이 비과학적이라고 단언해도 오랫동안 하나의‘문화’로 전승되어 온 믿음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도 없다. 다만‘신의 영역’으로 간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는 가급적 좋은 의미를 부여했던 그간의 풍습에 비춰볼 때, 태몽은 태교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사실 우리의 조상들조차 태몽을 무조건 신봉했던 것은 아니다. 불길한 태몽을 꾸면 아이를 더욱 정성스럽게 키우고, 길한 태몽을 꾸면 아이가 가진 재능을 최대한 살려주려고 노력했다. 다소 미신적인 요소가 있었다고 해도 대개는 일상생활에서 삼가고 준비하는 의례로 삼아 지혜롭게 처신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태몽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준비하게 해주는 요소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즉 태몽을 통해 아기의 존재나 미래에 대한 의미를 분석하기에 앞서, 자신이 엄마로서 준비되어 있는지 자성하는 계기로 삼으라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처한 환경 가운데 외적인 요인, 즉 직장이나 부부 문제, 시부모님과의 불화 등으로 인해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다면 갈등의 고리를 푸는 게 중요하다. 이렇듯 태몽을 엄마와 가족 문제의 갈등을 해결하는 사인으로 인식함으로써 태교에 활용할 수 있다면, 그것 자체가 좋은 태교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태몽은 엄마와 태아의 건강과 심리 상태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아기에 대한 자신의 소망과 욕구를 잘 드러내주는 지표로 받아들일 때,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어떤 꿈을 꾸었든 태몽을 통해 엄마와 태아 그리고 주변 환경을 돌아봄으로써, 보다 좋은 내용의 태교와 양육을 할 수 있다면 태몽은 그야말로 행복한 미래를 보장하는 ‘예지자’ 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출처 - 앙쥬



‘태몽을 통해 아기의 존재나 미래에 대한 의미를 분석하기에 앞서, 자신이 엄마로서 준비되어 있는지 자성하는 계기로 삼으라는 것이다.’ ‘태몽을 통해 엄마와 태아 그리고 주변 환경을 돌아봄으로써, 보다 좋은 내용의 태교와 양육’ 등의 말은 아주 좋은 말들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태몽은 태교보다는 장차의 예지적인 운명의 길을 계시해주고 있다. 태몽의 예지적인 세계를 벗어날 수도 뛰어넘을 수도 없으며, 태몽에서 예지된 대로 운명의 수레바퀴는 굴러가고 있음을 수많은 태몽 실현 사례는 보여주고 있다.


이는 태교를 중시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태몽의 효용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며, 실제로 태몽에 나타난 상징표상물의 전개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카나리아 새가 지저귀는 태몽인 경우 장차 성악이나 음악적인 운명의 길을 예지해주었다고 볼 수 있기에, 태교에 있어서도 음악 부분을 중시하여 음악을 많이 들려주는 태교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는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태몽속에서 일부 태교에 참고를 할 수 있겠으나, 태몽은 초월적인 영역의 세계인 것이지, 태교를 위한 태몽은 아닌 것이다. 즉, 태교는 어디까지나 태몽을 위한 실현 목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태교를 위한 태몽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4) 태몽은 민간신앙과 신화를 통해 미화된 것인가?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태몽 풀이를 통해 잉태 여부, 태아의 성별, 장래의 운명 등을 점쳐왔다. 이런 태몽의 풍속은 주로 민간신앙으로 전해지는 치성(신이나 부처에게 정성을 들임)이나 굿 따위의 무속적인 것, 주술적인 것 또는 점 등의 형태로 계승되었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 죽지랑, 원효불기, <열전>의 김유신조, <해동명신록>의 정몽주, 이이, 서경덕 편 등을 보면 역사 속 영웅들이 한결같이 범상치 않은 태몽을 통해 그 탄생이 예견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에는 인조와 숙종을 비롯한 왕 7명의 태몽이 하나의 관례처럼 실려 있다.


사실 태몽에 대한 믿음은 서방세계라고 해서 다르진 않다. 대표적인 예가 석가모니와 예수의 태몽이다. 불경에 따르면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 부인은 흰 코끼리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가는 태몽을 꾸고 석가모니를 잉태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성경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후에 그녀의 남편이 될 요셉의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예수의 잉태를 알려주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태몽은 이런 역사적인 기록들에도 불구하고 미신적인 영역으로 치부되고 있다.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은 "태몽은 단지 '예기불안' 등 임신에 따른 엄마와 가족의 심리상태를 반영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우리 문화권 내에서는 샤머니즘적 신앙과 결탁되면서 미화하고 과장된 측면이 있다"라고 말한다. 옛 기록들 역시 영웅을 미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신화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출처 - 앙쥬


태몽은 민간신앙과 신화를 통해 미화되었다는 앞부분의 언급은 일부 일리 있는 이야기이다. 민속신앙에서 태몽에 대하여 신성시하고 있음을 이용하여, ‘OOO전’으로 시작되는 대부분의 고전소설의 시작이 영웅의 신비한 태몽으로 전개되고 있는 바, 민중의 태몽에 대한 신성시 함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나 조선의 건국신화에 있어서도, 위정자들이 목적의식을 지니고 태몽을 통하여 신성시하고 미화하고 있기도 하다.(자세한 것은 필자의 『꿈으로 본 역사』 참고요)


하지만 ‘태몽은 임신에 따른 엄마와 가족의 심리상태를 반영한 것’이라는 주장은 신경정신과의 심리적인 측면에서만 언급하고 있기에, 태몽의 예지적인 특성을 도외시한데서 기인한다. 전체적인 입장에서의 태몽의 세계는 예지적인 미래를 보여주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서구의 논리에 휘둘려서 프로이트 등 그들의 주장만 대변할 뿐, 우리의 앞집 아주머니와 뒷집 할머니가 일생을 살아오면서 체험적으로 깨달은 예지적 세계에 대한 꿈의 세계에 대해서는 무관심할 뿐인 것이다.


하지만 사실 서양에서도 이러한 예지적인 꿈의 세계에 대해서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고 있다. 대표적으로 『성경』속에도 계시적이거나 예지적 꿈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고 있음에서 알 수 있겠다. 또한 고대 후기 꿈해석의 위대한 권위자인 ‘아르테미도로스’는 이러한 예지몽에 지대한 관심을 지녀, 필생의 역작으로 『꿈의 열쇠(Onirocriticon)』를 남기고 있는 바, 꿈을 해몽하는 주 목적인 꿈꾼 자에게 앞으로 행동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아르테미도로스’ 입장에서 살펴본다면, 태몽의 목적 또한 앞으로 인생의 길에서 나아갈 행동의 방향을 살펴보는 것이라 하겠다.



5) 태몽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는가?


여러 세기를 거쳐 전승되면서 태몽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먼저 주목할만한 것은 태몽의 예지력이 미치는 범주의 변화다. 과거에는 태몽을 통해 아기의 모든 것을 점칠 수 있었다. 즉, 신체적인 특징이나 성격, 행동 특성은 물론이고 어떤 직업을 갖게 될 것인지,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 유산되거나 요절하진 않을지 등 장래에 일어날 아기 운명 전반을 예지한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요즘엔 태몽 꾼 경우 아들인지 딸인지 여부에만 관심을 둔다.


요즈음 사람들이 태몽으로 아들․딸의 구분에만 관심을 지니는 것은 태몽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태몽의 예지적인 실현의 세계는 예나 지금이나 아무런 변화가 없다. 오늘날도 태몽의 세계를 믿고 안믿고는 개개인의 꿈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일 뿐,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태몽을 꾼 경우 아들인지 딸인지 여부에만 관심을 두는 것은 아니다. 꿈의 예지를 믿는 사람들은 태몽에 관하여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또한 태몽의 운명적인 예지에 대하여 믿고 있다.



6) 태몽은 임신 전후에만 꾸는 꿈인가?


태몽임을 인정하는 시기의 변화다. 과거에는 태몽의 시기가 일정한 것은 아니어서, 임신 혹은 출산 전후 언제라도 태몽을 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임신 중 또는 임신 직전으로 한정되어서 출산 후에 꾸는 것은 태몽이라고 보지 않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현대의 일부 생물학자들 중에는‘수정란이 나팔관 끝에서 난할(세포분열)을 시작한 뒤 아래쪽으로 내려가 자궁벽에 착상하기까지 약 1주일에 걸친 밀월여행의 기간동안 태몽을 꾸게 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진정한 의미의 태몽은 임신 사실을 알기 전에 꾸는 꿈일 것이다. 이 경우는 임신했는가 안했는가에 대한 결과만을 일깨워주고 있다. 하지만, 임신 사실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태몽의 참다운 의미가 장차 태어날 아이에 대한 운명적 예지를 보여주는데 있기에, 임신 사실을 안 후에라도 출산 전에 이르기까지 운명적 예지를 보여주는 태몽을 여럿 꿀 수도 있다. 따라서 임신중에 언제 꾸든 상관없이, 강렬하고 생생한 꿈의 전개로 펼쳐진다면 의미있는 태몽 꿈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수정란이 자궁벽에 착상하기까지 약 1주일 운운의 생물학자들의 주장은 이런 점에서 볼 때, 참고로나 할 것이지, 타당성이 있는 말은 아닌 것이다.



7) 태몽이 산모의 신체변화와 관련이 있는가?


생물학자 중에는 태몽의 표상을 임신 기간 중 산모의 신체 변화와 연관지어 설명하기도 한다. 즉, 태몽 중에는‘알’꿈과‘용’꿈이 유독 많은데, 알고 보면 그 이유는 따로 있다. 알 꿈을 꾸는 것은 둥근 난자가 나팔관 벽을 자극한 것이 꿈으로 구현된 것이고, 용꿈은 나팔관(수란관)의 ‘꿈틀운동(연동운동)’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지렁이’꿈을 꿨다고 해도 자의적으로‘용’꿈이라 인식하는 경향이 많다. 더 좋은 쪽으로 보고 싶은 욕심이 무의식적으로 신화적인 태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관련이 절대적으로 없다. 태몽 중에 ‘알꿈’과 ‘용꿈’이 많은 것이 아니다. 실증사례를 통계내어 보면, 오히려 뱀꿈과 열매 꿈이 더 많다. 알꿈을 난자의 둥근 모양에, 용꿈을 구부러진 나팔관의 연동운동에서 연유되었다고 하는 것은 생물학자의 궁색하고 근거없는 헛된 말이다. 그러면 가장 많은 뱀꿈 및 열매 태몽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다만, 지렁이 꿈을 용꿈이라고 더 좋은 쪽의 태몽으로 무의식적으로 신화적 태몽을 만들어낸다는 말은 맞는 말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꾼 꿈이 좋은 태몽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며, 또한 그럴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 이 경우 저마다 좋은 태몽을 꾸었다고 하지만, 좋은 인생길이 펼쳐지지 않는 것은 태몽 자체가 그다지 좋지 않은 태몽일수도 있다. 꿈의 세계는 한 치의 오차도 거짓도 없다. 태몽의 세계는 더더욱 그렇다. 오직 우리 인간의 잘못된 해몽만 있을 뿐---.



8) 태몽은 임신부에 의해서 선택적으로 지각된 것인가?


동서심리상담연구소 백현정 태교 상담실장은“잠자는 동안 모든 사람을 꿈을 꾸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기억한다. 특히 사람들은 강렬하고 생생한 꿈을 좀더 특별하게 기억하는데, 이 꿈이 임신 전이나 임신 중의 기간과 맞물려 일어났을 경우 그것이 태몽으로 간택된다. 결국 태몽은 많은 꿈 중에서 임신부에 의해 선택적으로 지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몽은 많은 꿈 중에서 임신부에 의해 선택적으로 지각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친지나 주변 사람들이 대신 꿔주는 태몽꿈은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는가? 미래예지적인 태몽은 임신부가 임의로 선택하고 안하고가 아니라, 하늘의 운명적인 계시이며, 일깨움이다. 중대한 일의 예지이기에 20~30년 뒤에라도 기억될 정도로 생생하고 강렬한 꿈의 기억으로 알려주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태몽은 반드시 임신부가 아닌, 주변 친지나 동료 등이 대신 꿔주기도 한다.



9) 태몽의 표상과 세부적인 내용과 풀이도 다양해졌는가?


태몽의 표상이 과거에는 용․보석․별․달․해 등 몇 가지로 한정돼 있었고 그 내용도 거의 천편일률적이었던 데 반해, 요즘은 다양하고 복잡해진 세태를 반영한 탓인지 태몽의 표상과 세부적인 내용도 다양해졌다. 요즘 엄마들의 태몽은 같은 용꿈이라도, 그 배경이나 상황 등이 정확하게 일치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태몽을 풀이하는 방법에 있어서의 변화다. 과거에는 태몽을 신성한 영적 영역이라고 간주했기 때문에, 점술가나 무당, 주술사 등 신과 교통하는 사람들만이 이를 해석할 수 있었고 이들은 액운에 대한 해결책까지 제시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심리학자들을 중심으로 태몽을 좀더 과학적, 심리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태몽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이뤄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태몽의 다양한 상징표상은 옛날에도 다양했으며,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이 다양하다. 문헌에 적힌 위인들의 경우이기에, 용․보석․별․달․해 등이 많이 기록되어 있을 뿐, 그 당시에도 일반인들은 그 시대에 맞는 다양한 태몽 꿈이 존재했다.


‘문학은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말이 있지만, 마찬가지로 꿈의 상징표상물도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옛 선인들이 자동차 꿈을 꿀 수 없었던 것이 당연하듯이, 오늘날 꿈속에 자동차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꿈의 전개이다. 꿈을 꾸는 주체인 우리 정신능력은 적절한 소재를 선택하여 가장 효과적인 상징물을 등장시키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시대의 변천에 따라 태몽에 등장하는 상징 표상물과 세부적인 내용전개가 다양해지는 것은 당연한 말인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같은 용꿈을 꾼다고 하더라도, 예나 지금이나 같은 배경이나 상황으로 전개되는 꿈은 하나도 없다. 예를 들어, 호랑이가 등장하는 태몽을 꾸었다고 하더라도, 같은 상황과 같은 전개의 태몽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필자가 태몽이나 꿈을 굳게 믿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 자신이 태어난 생년월시와 같은 사주(四柱)를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의 운명의 길이 모두 같다는 말인가? 하지만 똑같은 태몽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꿈의 세계는 1:1의 예지적인 맞춤 정보이며, 태몽은 오직 그 아이만을 위한 인생의 청사진이요, 안내도요, 하늘의 운명적인 계시인 것이다.


태몽을 풀이하는 사람에 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겠다. 옛날의 제정일치의 시대이자, 무속인이나 점쟁이들이 해몽하던 시대에서, 과학적․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하며 실증사례에 토대를 둔 태몽표상물에 대한 상징기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연구가 가능한 학자 등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예지적인 태몽의 세계를 과학이라는 미명하에 미신시하고 근거없는 영역으로 인식하는 것은 잘못이며, 영적인 태몽의 세계를 심리 표출에 역점을 두고 있는 심리학의 입장에서 연구하는 것도 올바른 접근방법이 아닌 것이다.



10) 태몽이나 꿈을 인위적으로 조절해 꿀 수가 있는가?


올해 초 최면술을 이용해 원하는 꿈을 마음대로 꿀 수 있게 해주는 비디오테이프가 등장했다. 이 비디오테이프만 있으면 ‘돼지 꿈’과 같은 대박 꿈도 가능하고, 용이 등장하는 태몽도 꿀 수 있다고 한다.


신구대학 김영국 교수에 의해 제작된 이 비디오테이프는 잠잘 때 뇌파가 알파파로 바뀌는 원리를 이용해 만들어진 것으로, 비디오를 시청한 사람은 온몸의 힘이 빠지며 나른함을 느끼게 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뇌파가 안정되면서 최면상태로 유도된다. 이때 원하는 꿈을 유도하는 장면을 보여주면 그 꿈을 꾸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대로라면 마치 백화점에서 옷을 고르듯이 자신이 입맛에 맞는 꿈을 골라 꾸게 된 것이다. 이는 심리학자들의 주장대로 꿈은 개인의 현실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이를 다양한 영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증거자료가 된다.



최면 기법을 이용하여 ‘돼지꿈을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꾸게 해준다’, ‘사람이 마음대로 꿈을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 경우 길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당장 발명한 사람이 실험체가 되어, 로또 대박의 돼지꿈이나 용꿈을 인위적으로 꾸는 길로 나아가면 될 것이다. 로또 당첨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돼지 그림이나 사진을 본 후에, 꿈속에서 돼지가 나왔다고 그것이 돼지꿈이란 말인가? 미래예지적인 꿈에서 돼지꿈이 지니는 다산과 번식력의 재물운의 상징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말인가? 이는 고향에 가고 싶은 자신의 간절한 바람에서, ‘꿈에 본 고향’이란 말이 있듯이, 로또 당첨을 바라는 ‘꿈에 본 돼지’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꿈에 돼지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이는 심리적인 소망 표출의 꿈이기에, 장차 일어날 일을 보여주는 재물운의 상징적인 미래예지적인 꿈으로 절대로 실현될 수는 없을 것이다. 용이 등장하는 태몽 꿈 또한 마찬가지이다.


정신분석학적으로 꿈을 분석하여, 심리상태를 파악한다든지, 치료에 도움에 되게 하는 것은 프로이트 이후 널리 알려져 있다. 이처럼 인위적인 꿈을 이용하여, 심리적 불안감의 해소나 심리적인 안정을 가져오게 하는 등의 심리적인 치료는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꿈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 바, 심리표출의 꿈도 있지만, 가장 주요한 것은 미래예지 꿈의 세계로, 로또 당첨이나 태몽은 대표적인 미래예지 꿈이다. 이러한 태몽에 대해서 심리 운운을 논하는 심리학자들은 문밖에 있는 문외한들이기에, 운명적인 계시라고 할 수 있는 태몽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자격조차 없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듯이, 하루살이 세계에서 예지적인 내일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도 없으며, 따라서 보일 수도 없으며 볼 수도 없는 것이다. --무단 전재하거나 표절시 저작권 위반으로 고소됨. 홍순래 박사 꿈해몽(http://984.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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